그래서 돈이 될 수 있는 방법이라면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았다. 그 무렵 구포의 철도역에 열차가 닿으면 역원들의 눈을 피해 부녀자들과 아이들이 플랫폼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서서 차창 밖에서 차내 승객을 향해 봄에는 조그마하게 만든 광주리나 상자에 딸기를 담고 가을이면 배를 꾸러미로 엮어『내 딸기 사이소』한다거나『내 배사이소』하고들 했다. 그게 구포의 진풍경이요, 풍물지였다. 기차가 닿을 때면 순간적으로 몰려드는 행상꾼에는 아주머니가 많았는데 그 아주머니가『내 배 사이소』하는 배(梨)가 배(腹)로 승객들이 짓궂게 들어 재미있어 했고, 『내 딸기 사이소』의『딸기』의『기』소리가 바삐 내는 말에 줄어들어 『내 딸 사이소』로 들려 또 짓궂게 해석을 했다. 시외버스 정류소에서도 버스가 닿으면 딸기 또는 배를 들고 우르르 달려갔다. 그래서 그『배』나『딸기』는『구포배』,『구포 딸기』라 하여 유명했다. 그러나 그 배는 김해의 대동면과 강서구 대저동에서 생산되었고, 딸기는 오늘날의 사상의 삼락동 강가 퇴적지에서 재배된 것이었다. 김해 대동면과 대저동의 배는 일제가 낙동강의 둑을 조성하여 농경지를 형성하면서 배나무를 심은데서 비롯되었고 삼락동 역시 둑의 형성과 함께 그 지역이 비옥한 농경지로 바뀌면서 딸기 재배가 이루어졌다. 대동면과 대저동은 배재배의 적지가 되어 생산품은 질이 좋았다. 일제 때에는 구포선창에서 배가 실려 일본으로, 구포에서 경부선, 경의선 기차를 통해 만주까지 갔다. 지금은 배나무 자체의 노쇠기를 맞고, 삼락동의 딸기밭도 보다 나은 수익원인 비닐하우스의 고등채소 재배로 바뀌었다가 주택가로 바뀌면서 그 명성을 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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