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들으니 원나라 순제 때에 저절로 치는 물시계가 있었다 하나, 만듦새의 정교함이 아마도 영실의 정교함에는 미치지 못하였을 것이다. 만대에 이어 전할 기물을 능히 만들었으니 그 공이 작지 아니하므로 호군(護軍 정4품)의 관직을 더해 주고자 한다' (세종 15년(1433)9월16일자 실록) 왕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백성들에게 일할 시간과 쉬는 시간을 알려주고 이를 규제해 사회생활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왕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백성들을 교화시키는 것이 유교적 왕도정치였으므로 하늘의 움직임을 정확히 측정해 백성에게 알리는 것은 어느 왕조에서나 중요했다. 전상운 교수(전 성심여대총장·한국과학사)는 "하늘의 뜻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시계는 왕권(power)과 질서(order)의 상징이고 수단이었다"며 "조선은 세종대에 들어 장영실이 기계식 자동물시계인 자격루를 완성함으로써 신흥 왕조의 정통성을 공고히 했다"고 말했다.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自擊漏)는 한 마디로 자동 시보장치를 갖춘 기계식 물시계이다. 이전까지는 물시계 옆에 사람이 지키고 있다가 물통 위로 떠오르는 잣대의 눈금을 읽고 북과 징 등을 쳐서 시각을 알렸다. 따라서 관리요원이 졸다가 시간을 알리는 때를 놓치거나 눈금을 잘못 읽는 착오가 잦았고 그때문에 처벌을 받거나 파면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에 세종은 재위 7년(1425년) 장영실 등에게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시각에 따라 스스로 알릴 수 있는 시계를 만들 것'(세종실록 64권)을 주문했고 장영실은 중국과 아라비아의 물시계를 비교 연구해 8년 뒤인 세종 15년(1433) 자동시보장치를 갖춘 새로운 형태의 기계식 자동물시계를 완성한 것이다. 세종실록 `보루각기'를 연구 고증한 건국대 남문현 교수의 자격루 복원그림. 전체 길이가 가로로 약 6m, 세로 2m, 높이 6m에 이르는 거대한 기계식 자동물시계이다. 위의 그림은 시보장치의 내부를 복원한 설계도면으로 완벽한 자동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자격루는 시계장치와 시보장치로 구분된다. 현재 1만원권 지폐에 나오는 자격루는 물시계 부분이다. 그러나 자격루의 모습은 세종실록에 기록으로 남아 있을 뿐 설계도나 궁중도와 같은 그림자료가 전무한 실정이어서 연구도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장영실이 만들고 15세기 당대 세계 최고라는 자격루에 대한 평가가 측우기나 갑인자보다 미진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자격루의 구조와 원리가 건국대 남문현 교수(전기공학·한국기술사연구소장)의 노력으로 밝혀졌다. 지난 84년부터 자격루를 연구한 남 교수는 과학기술부의 전통기술복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지난 96년 자격루의 시보장치를 실험적으로 재현하는데 성공했다. 남 교수가 복원한 자격루는 물시계 부문이 가로 3m 세로 2m 높이 5.3m, 시보장치는 가로 세로가 각 2m, 높이 6m의 거대한 기계장치이며 공학적으로 완벽한 자동화시스템이었다. 자격루의 물시계 부문은 중종때 만든 것이 덕수궁에 남아있다. 청동으로 만든 물항아리 5개 가운데 위에 놓인 3개는 물을 대어주는 파수호, 아래쪽의 둥근 원형 물항아리는 흘러내린 물을 받는 수수호이다. 시계장치는 물을 대어 주는 항아리를 위에 배치하고 여기서 흘러나오는 물을 받는 항아리를 아래쪽에 설치해 연속적으로 증가하는 수위를 '띄운 잣대(浮箭)'를 이용, 시간 단위별로 나타나는 신호를 작은 구슬을 이용해 시보장치쪽으로 전달한다. 보장치에는 인형이 3개 있고 인형 앞에는 종과 북과 징이 놓여있다. 인형들은 시간이 되면 그 앞에 놓여있는 종, 북, 징을 각각 치게 된다. 종은 낮시간을 포함해 하루 내내, 북과 징은 밤시간을 알린다. 시보장치의 내부에는 작은 구슬로 정해진 시간신호를 신속 정확하게 시보토록 하는 기계장치와 12지신 동물의 인형이 숨어 있다. 시보는 십이시(十二時) 즉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매시마다 종을 한 번씩 울리고, 동시에 내부에 든 12지신 동물인형이 뻐꾸기 시계처럼 시간이 적힌 팻말을 들고 나와 시간을 알렸다. 예를 들어 자시(子時 밤 11~새벽 1시)에는 이를 상징하는 쥐가 '子'자가 적힌 팻말을 들고 나와 지금 울린 종소리가 '자시'임을 알려준다. 밤에는 북과 징을 쳐 시간을 알렸다. 하룻밤을 5경(更)25점(點)으로 나누어 매경마다 북을 치고, 1경을 5점으로 나눠 각 점(24분)마다 징을 치도록 했다. 밤시간의 시작인 1경은 오후 7~9시이며 마지막 5경은 새벽 3~5시이다. 고려말 이조년의 시조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에 나오는 삼경은 밤 11시~새벽 1시를 가리킨다. 5경은 황혼(黃昏) 인정(人定) 야반(夜半) 계명(鷄鳴) 평단(平旦)으로도 부르며 인정에 도성문을 닫았고 파루(5경3점)에는 문을 여는 시보를 알리는 인정과 파루 제도가 조선조에는 엄격히 시행됐다. 시간은 또 각 가정에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군사들이 보초를 교대해야 하는 때를 알려주는 것이기에 이를 정확히 알리는 것은 중요한 국가사무였다. 장영실의 자격루는 낮시간은 물론 밤시간도 정확히 측정하는 자동물시계여서 왕권과 국력을 백성들에게 과시할 수 있는 좋은 소재였기도 했다. 자격루에 있어서 시계장치와 시보장치를 연결하는 핵심은 만원짜리 지폐에 크게 나오는 물받는 항아리인 수수호(受水壺) 부분에 있다. 수수호 내부에는 물이 차이면 점점 올라가는 띄운 잣대가 있고, 수수호 위에 세워진 네모난 나무틀(방목 方木)안에는 작은 구리공을 1개씩 담아놓은 선반들이 층층이 만들어져 있다. 방목은 2개가 있는데 하나는 십이시를 나타내는 작은 구리공이 12개, 또다른 하나는 밤시간용으로 25점을 나타내는 작은 구리공이 25개 놓여 있었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수수호의 수위가 오르면 띄운 잣대의 머리가 방목 내부의 선반을 건드려 작은 구리공이 시보장치쪽으로 굴러가서 그 속에 있는 격발장치 등을 움직여 더 큰 쇠구슬을 떨어뜨린다. 쇠구슬은 논리적으로 배열된 기계장치 내부에서 각종 기기를 움직여 인형의 팔꿈치를 작동시켜 종과 북을 치게하고 뻐꾸기시계처럼 12지신 인형이 시보장치 밖으로 나와 시간을 알려주도록 했다. 남문현 교수는 "자격루의 기본시간 측정기인 물시계는 전형적인 액면제어 시스템이다. 수면의 변화에 따라 발생된 작은 신호는 지렛대와 쇠구슬의 위치에너지를 적절히 이용해서 얻은 기계적인 에너지로 전환돼 시보인형의 팔꿈치를 로봇팔처럼 작동시켜 종 북 징을 자동으로 치게하고, 12지신 인형을 움직이게 한 하나의 완벽한 자동화 시스템"이라고 평가했다. 즉, 자격루는 연속적으로 증가하는 물시계의 수위를 일정한 시간 간격마다 청각과 시각적인 시간의 지표로 변환시키는 일종의 아날로그-디지털 변환기(방목)까지 갖춘 디지털 시계라는 점에서 인류의 시간측정사에 큰 획을 긋는 위대한 발명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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