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자랑/부산의 토산품

12. 대저배

박영길 2009. 2. 3. 00:09


▒ 대저배 ▒


    1905년『을사조약』이 체결된 전후로 하여 우리 나라에 이주해 온 일본인들은
    낙동강 하구의 비옥한 삼각주의 충적토지대인
    오늘날의 대저지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만 해도 삼각주의 하천부지가 지번과 지적이 없는 주인없는 땅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우리 영세농민들은 갈밭을 일구어 홍수의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경작이 가능한 토지를 이용하여 농사를 지었다.
    그곳을 일본인들이 일본정부의 배후세력에 힘입어 밀려들어 오기 시작하였다.
    1908년 일본은 일본정부의 국책회사인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만들어
    우리나라 경제를 독점 착취하기 위해 서울에 본점을 두고 각 지역에 지점을 두었다.
    이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낙동강의 대저지역을 중심으로 둑을 쌓아
    우선의 홍수피해를 막으면서
    그렇게 쌍은 땅을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의 땅으로 만들고,
    그곳에 일본인 농부들을 이주시켰다.
    그동안 하천부지를 일구어 오던 우리 농민들은 그들의 소작인 되거나
    보다 아래쪽 하천부지를 다시 개간하여 경작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형성한 동양척식주식회사 땅으로 이주해 온 일본인은
    수분이 풍부하면서도 배수가 좋은 사질토를 이용하여 배나무를 집단적으로 심었다.
    그 중심지는 배두리 지역이었고,
    이 지역일대는 봄이오면 배꽃이 만발하여 장관을 이루었다 한다.
    이곳에서 생산된 배는 질이 좋아
    일제시기만 해도 구포선창에서 배에 실려 일본으로 가져갔고,
    구포역에서 경부선 열차에 실려 만주까지 갔다.
    그래서 생산지는 대저였는데 구포배로 통했다.
    그 동안 노쇠기에 든 나무를 새로운 품종으로 대체되면서 8.15광복을 맞았다.
    광복이후 적산관리청을 통해 배나무 과수원 주인은 우리나라 사람으로 바뀌고,
    좋은 품종의 배나무들이 심어지면서 대저배의 명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70년대 들어서면서 채소재배의 농사가 배 생산보다 나아지자
    노쇠기에 접어든 배나무는 베어지고 채소농사 재배지로 바뀌어
    오늘날에는 배나무 과수원은 대저 동쪽인 강동동쪽으로 그 중심이 바꾸어
    옛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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